연애심리

남자친구 있는 첫사랑 곁에 남기 위해 내가 한 선택

icaros0515 2026. 9. 22. 21:49
반응형

학교 다닐 때, 날이 좋은 어느 날이었다. 교실에서 수업을 듣다가 멍을 때리며 무심코 열려 있는 건너편 교실을 봤다.

그때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내 첫사랑. 그날부터 난 잘 깨어 있지도 않던 수업 시간에 그 아이가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수업 내내 흘끔흘끔 쳐다보며 혼자 행복해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생전 처음으로 미행이란 걸 하게 됐다. 근데 누가 봐도 이건 대놓고 "나 저 애 따라다닌다"라는 것이다. 그렇게 티 나게 따라다니며 나름 우연을 가장해 보기도 하고, 필연적인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기도 하며 어설프긴 했지만 나 스스로 그 아이의 개인비서가 되다.

 

그래도 그렇게 그 아이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찌나 좋던지. 마냥 그 아이의 노비가 되어 지내면서 차츰 책으로만 읽었던 연애 기술들을 하나하나 해보기 시작했다.

 

기본적인 것 중에는 무작정 집 앞에 찾아가 꽃을 들고 기다렸다가, 아무렇지 않게 꽃을 건네주며 "오늘 그냥 이걸 주고 싶었어"라는 말만 하고 돌아서는 것도 있었다. 다른 이성 친구들과 어울려 있다가도 연락받으면, 무슨 일을 하고 있든 간에 5분 대기조처럼 대기하고 있다가 바로 튕기듯 튀어가곤 했다.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이었다. 시간도 분위기도 괜찮은 공원을 같이 걷다가 조용한 벤치에 앉게 되었는데, 그날따라 그 아이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걸 느낀 나는 — 처음부터 이 아이에게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애초에 고백도 없이 좋다고 따라다닌 내가 어떤 식으로든 안쓰럽게 느껴져서일지, 내 어떤 행동이 부담스러워서일지 — 불안한 마음에 속으로 발을 동동 구르다가, 대답을 기다리기보단 먼저 얘기를 꺼냈다.

 

"난 있잖아, 첫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그 말, 그 말이 내 논리로는 이해가 안 돼서 내가 직접 해보겠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나고 싶진 않아. 그래서 허락해 줬으면 좋겠어. 내가 이렇게 너를 좋아할 수 있게, 그저 이렇게 네 곁에서 혼자 좋아하다가 이 마음이 다 소모되어 스스로 지쳐 떨어질 수 있게, 나한테 조금만 시간을 줘. 정말 부담스럽지 않게 조용히 혼자 좋아할게. 그렇게만 해주라."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렇게 허락 아닌 허락 같은걸, 그날 내 말만 하고 너의 부정의 말은 절대 듣지 않겠다는 내 모습에 살포시 웃고 넘어가 준 그 이후부터는 더 직접적으로 그 아이의 하인이 되었다. 그런 말도 있잖은가. 여자가 남자를 만나면 덩달아 하인도 한 명 생기는 거라는.

그 아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게 광대 역할을 자처하며, 그 아이 옆에서 최대한 떨어져 있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한 역할 중에는 — 그 애가 가끔 폭력성이 올라올 때가 있었는데, 그것들조차 종종 전부 다 맞아주기까지 했던 나였다.

 

그런 나날들이 순탄하게 흘러가나 싶던 중, 그 아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아직 아무 경험도 해보지 못했던 나는, 그 애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감내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았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고, 무얼 담을 그릇조차 준비되지 못한 나는 그 애의 사회생활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흔히 있는 직장 내 상사와 일개 사회 초년생 사이, 회식 자리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일들은 당시 연애 초짜였던 내가 감당하기엔 많이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련의 사건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그 애 곁에 있어 주며 자연스레 위로라는 걸 건네고 무슨 이야기든 잘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그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면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과 간접적인 정 테러를 스스로 느끼게 됐고, 그 상황들을 마냥 위로만 해줄 수는 없었다. 여기저기서 지혜가 없었던 나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슬픔과 고난은, 그것들을 다 겪어본 사람만이 위로할 자격을 얻는다"라는 말을. 그런 내가 연애든 사회 경험이든 너무나 무지하고 어렸기에, 그런 상황들을 들어주던 어느 날, 나는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먹었다.

반응형